"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종로 탑골공원 앞. 보랏빛 수건의 어머니들 가운데 유난히 연로해 보이는
분이 있다. 올해로 구순인 고봉희 어머니. 매주 목요일이면 발걸음 조차 떼기 어려운 몸을 이끌고
성남에서 버스를 타고 온다. 어머니는 제일 먼저 아들의 사진부터 찾는다. 몇번이고 사진을 쓰다
듬고는 천천히 머리에 보랏빛 수건을 맨다. 이 집회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며 밤새워 썼을 것 같은
편지를 낭송하기도 하고, 다리가 아파 주저 앉아서도 아들의 사진을 안고 있기도 했다.
이 어머니의 아들, 신인영씨(70세)는 31년째 차가운 독방에 갇혀있다. 67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아들을 30년이 넘도록 기다려온 어머니.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그릇 지어먹일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어머니에게 최근 그 숱한 기다림보다 더한 시련이 닥쳤다. 아들 신인영씨가
골수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어떤 이념도, 어떤 형벌도 생명의 고귀함 앞에 우선할 수는 없다.
이 어머니와 아들은 반드시 살아서 만나야 한다."
<98년 1월 15일 신인영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 보도자료>
양심수 전원 석방의 희망을 안고 이뤄진 특집 목요집회는 2개월 내내 골수암으로 투병중인
신인영 씨를 비롯, 비전향장기수의 석방을 호소하는 집회가 계속되었다.
사진:임수경씨과 고봉희 할머니



 
 

"93년 9월 23일 시작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목요일마다 열어온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 잠시만 서 있어도 꽁꽁
얼 것 같은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마철 비바람에도 고난과 희망을 상징하는
보랏빛 수건의 어머니들은 꿋꿋이 이 집회를 지켜왔습니다.
다리가 저려 자식의 사진을 부여안고 쪼그려 앉아 있을 지라도 목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모여들던 어머니들의 집회. 93년 우리는 '변화와 개혁'을
주창하는 민간인 출신 대통령의 출현이라는 환상 속에 민주화와 사회개혁이
실종되고 심각한 인권침해가 벌어져도 속수무책인 현실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부당한 악법과 공권력의 남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양심수의 문제 및
제반 인권침해사례를 직접 국민들에게 알리고, 양심수의 석방과 악법철폐
및 인권개선을 정부에 촉구하고자 목요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암환자 아들을 살려달라는 구순의 고봉희 할머니에서부터 엄마·아빠를 감옥에 빼앗기고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던 5살 한솔이까지 참으로 많은
인권피해자들의 절규와 호소, 그리고 눈물로 만들어온 집회입니다. 우리는 이 집회를 통해 수십년 동안 잊혀졌던 초장기수들을 알려냈고,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해온 권력에 양,심,수,라는 세 글자를 인정하게 했으며, 수십년 동안 헤어졌던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아내와 남편의 만남을
이루어내기도 했습니다. 600회를 넘어서는 ‘목요집회’는 양심수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이주노동자, 철거민, 장애인, 양심에따른병역 거부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그 품을 넓히고 있습니다. 목요집회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인권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계속 될 것 입니다.







고 김광석 송시현 권진원 안치환 김현성 꽃다지
노래마을 노찾사 조국과 청춘 김영남 최도은 등
수많은 가수들이 목요집회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인권향상을 위한 어머니들의 행렬에 함께 했다.
사진:김광석 거리음악제


지구의 양끝 한국과 아르헨티나에서 매주 목요일
하얀 머리수건과 보라색 수건의 행렬을 이어온
어머니들. 1994년 6월 9일 열린 39회 목요집회에서
피와 눈물과 땀의 역사를 딛고 감격적인 만남을
이루었다.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내
자식이며 우리 공동의 아들, 딸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이제 너와 나, 우리의 아이들을 함께 지켜나가자는
약속입니다. 그동안의 고통을 넘어 자식들이 들었던
깃발을 높이 들고 힘차게 전진할 것입니다."
<공동선언문 중에서>
사진:94년 06월 10일 한겨레 신문

"25살에 체포되어 아내도 자식도 있을 수 없는 김선명은 그의 가장 따뜻한 기억,
이제 구순이 넘은 어머니를 살아서 만나고픈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일흔의 김선명 노인은
독방에서 울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생사를 몰라 안타까워하던 그가 최근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는 것, 그 어머니가
대소변을 받아내는 지경에 이르러 생사를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한 주간지를 통해 알게된
것입니다. 44년 동안 간절하게 기다려온 만남. 일흔의 아들, 구순의 어머니는 꼭 살아서
만나야 합니다. 그것은 한 인간을 40여년 동안 가두어둔 우리가 우리의 양심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뼈아픈 현대사, 분단 50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지는 일입니다." <94년 12월 29일 68회 목요집회 보도자료 중에서> 목요집회에서는
김선명을 비롯, 초장기수들의 석방을 호소하여 마침내 석방을 이뤄냈다.
사진:초장기수 석방촉구 어머니들<시사저널>




"이근안을 체포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고문 없는 사회, 사람이 사람 대접 받는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89년 2월 21일 민가협의 이근안
현상수배기자회견문 중에서).
목요집회에서는 고문경관 이근안
검거촉구와 반인도적 고문 추방 및 재발방지 캠페인을 벌였다. 이는 1999년 10월 28일 이근안이 자수하여 재판을 받는 동안 계속되었다.
사진:이근안 검거촉구 집회
(98년 6월 11일)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입학축하 인사도,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하는 딸을 보내는 마음도, 오랜 투병생활 끝에 운명하신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슬픔도, 만삭의 부인이 홀로 산고를 겪으며 낳은 자식에
대한 기쁨도, 힘겨운 감옥생활 중에 얻은 작은 고마움도, 사면에서
제외된 서운함과 또다시 찾아올 희망에 대한 기대도 '검열필'이
찍힌 한 장의 편지로 밖에 전할 수 없는 이들. 양심수들에게 편지는
삶이다. 1998년 7월 30일 239회 목요집회에서는 15척 담장을
사이에 두고 갇힌 이들과 가족들이 주고 받은 편지를 그대로
전시해두고 양심수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눴다.







독립성과 실효성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촉구하며
법무부의 인권법안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1998년 12월 3일 257회 집회



98년 크리스마스 오후 2시.
'공부'하러 간 아빠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양심수 자녀들이 모여있는 탑골공원 앞에
썰매를 탄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보따리를 지고 나타나
아이들과 함께 성탄 소망을 빌었다.
"산타할아버지, 제가 제일로 받고 싶은 선물은 바로
우리 아빠에요!"
1998년 12월 25일, 260회 목요집회사진:한겨레신문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자신들의 석방을 그토록 외쳐왔던 목요집회에 참가, 보랏빛
수건을 목에 두르고 탑골공원 앞을 지켜온 비전향 장기수들이 송환을 앞둔 2000년
8월 24일, 343회 집회에서 어머니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민가협 대표단을 만난 이들은 목요집회를 기억하며
"내 자리 하나 꼭 남겨두오"라고 전해왔다. 비전향장기수 마지막 목요집회.
사진 : 한겨레 8월 25일




2001년 8월 2일, 광복절을 앞두고 법무부가 대통령에게 광복절
특사를 하지 말라고 건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목요집회를 법무부
앞으로 옮겼다. 환자와 고령의 양심수가 기나긴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법무부가 도리어 사면을
가로막고 있다니 분노를 안고 법무부앞에서 피켓 감옥을 쓰고
시위를 벌였다.
"갇혀있는 자식들을 대신해 차라리 우리들을 감옥에 보내라!"


대통령에게 하고픈 말이 있어도 집시법에 묶여 청와대 근처에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아예 "청와대를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매주 집회를 하고 있는 탑골공원 앞으로 말입니다. 청와대 높은
기와지붕을 잠시 빌려 오고, 인권대통령도 모셔오기로 했습니다.
대통령 가면도 하나 만들었으니까요. 수의를 입고 피켓 감옥에 갇힌
어머니들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권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이번 8·15에 179명의 양심수와 200여명의 수배자가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건가요?" "양심수 석방을 외면하는 대통령은 이제, 인권대통령이길
포기 하셨는지요?" <2001년 8월 9일 389회 집회 보도자료 중에서>
2001년 8월 9일 389집회 (사진:한겨레 이정용 )

"민가협의 투쟁과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적인 투쟁을 국제사회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당시 최장기수였던 우용각씨의 사진을 들고
목요집회에 함께한 피에르 사네 국제엠네스티
사무총장은 비전향장기수 석방을 촉구했다.
1998년 9월 10일 245회 집회

 

 

 

 
Copyleft 1985-2004,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MINKAHYUP | minka21@hanmail.net
서울 종로구 명륜3가 108-3 1층 | TEL 02-763-2606 | FAX 02-745-5604